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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운 커피 브루어

뉴스레터
#126. 커피를 내리면서 든 생각
컨트리뷰터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4/05/29
Tags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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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저의 브루잉 생활을 한번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최근에 커피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야겠다 생각한 계기가 있었거든요. 겸사겸사 여러분의 브루잉 이야기도 여쭈어보고 싶어요. 그럼 제 이야기 먼저 시작해보겠습니다.
5월에 커피하우스에서 협업한 디타 아르티지아날레의 원두로 내린 커피 한 잔. 정아름Joy
저는 커피 내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오늘의 기분에 맞게 커피를 고르고 탕비실로 향합니다. 물을 끓이고, 그라인더로 원두를 가는 일은 마치 어떤 의식처럼 저를 ‘커피 브루잉’ 모드로 바꾸어 줍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머리를 스치는데요. 제가 아는 가장 간단한 레시피로 커피를 내린 후 자리로 돌아오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져 있음을 느낍니다.
그라인더로 갈고.Ⓒ정아름Joy
탕비실에 퍼지는 향기.Ⓒ정아름Joy
커피를 내립니다.Ⓒ정아름Joy
책상 위로 안착한 커피.Ⓒ정아름Joy
여기까진 참 평화롭고 좋은데요. 커피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이 평화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커피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하나둘 느껴지기 시작해요. 그 원인이 생두인지, 로스팅인지, 추출인지 혹은 디개싱인지 생각해보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에요.
 커피 마시는 데릭의 머릿속 • 커피에서 지푸라기 냄새가 난다. 수확한 지 오래된 생두일까? • 풋내가 나네. 라이트 로스팅하려다 보니 원두 속까지 충분히 익히지 못 했던 것일까? • 향미가 단조롭고 밋밋한데, 지나치게 라이트하게 로스팅된 것일까? 혹은 내가 원두를 너무 굵게 분쇄한 것일까? • 커피가 많이 쓰다. 원두 표면이 과하게 로스팅 된 것일까? 아니면 분쇄도가 너무 가늘어서 쓴맛 성분이 많이 추출되었을까? • 정보만 보면 과일스러울 것 같은 커피인데 구운 향 위주로 느껴진다. 로스팅 적정 지점을 넘어 과하게 로스팅이 된 것일까? 아니면 로스팅한 지 얼마 안 된 커피라서 며칠 기다렸다 마시는 게 좋을까?
그라인더를 살펴보는 데릭.Ⓒ정아름Joy
이렇게 분석적으로 커피를 뜯어보는 일은 지적으로 큰 재미를 줍니다. 별생각 없이 마셨을 때보다 더 의미있는 경험을 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이렇게 ‘문제’ 중심으로 커피를 바라보는 일은 나도 모르게 브루잉의 즐거움을 줄이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멋모르고 커피 내리던 입문 시절이 훨씬 즐거웠던 것 같거든요. 뜨거운 물이 드리퍼에 놓인 커피 가루를 적시고 내려가는 모습만 봐도 뿌듯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무려 3년 전 로스터리에서.Ⓒ빈브라더스
2024년 5월의 데릭.Ⓒ정아름Joy
분석적으로 커피를 브루잉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런 느낌일까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커피 품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커피 내리는 과정에 대해 예민하고, 조심스럽죠. 커피가 마음처럼 내려지지 않으면 자기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뭘 잘못한 것일까?’, ‘분쇄도가 가늘었나?’, ‘물 온도가 낮았나?’, ‘추출 수율을 더 높여야 했을까?’ 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이렇게 엄격하게 바라보는 만큼 커피가 맛있게 느껴질 때의 기쁨도 큽니다. 생각했던 대로 커피가 딱 내려졌을 때의 즐거움은 그날 하루를 신나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죠.
그런데 커피가 재미있는 게, 한번에 딱 맛있게 내려지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일단 한번 내리고 맛을 본 후에야 어떤 지점이 맛있을지 알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여러 번 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원두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 일단 얼른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굳이 또 한 잔을 내리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에 조금 안 차는 커피를 책상에 두고 마셨던 것 같아요. 아쉬워하면서요.
힘차게 업무를 시작해봅니다.Ⓒ정아름Joy
이렇게 스스로에게 엄격한 브루잉 생활을 이어오던 어느 날, 제가 커피를 너무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린 커피를 유독 그렇게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사실 커피가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맛’만은 아니잖아요. 누군가 특별히 시간을 내어 내려준 커피에 마음이 활짝 열리기도 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죠. 날씨나 공간의 분위기가 좋을 때 마시는 커피는 그렇지 않을 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지고요. 커피를 마시는 맥락이 맛에 기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죠. 오늘 제 커피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은 제 브루잉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만, 왠지 같은 커피라도 다른 사람이 건네주었다면 더 맛있게 마시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도 열심히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 커피를 내릴 예정이긴 한데요. 일단 다 내린 커피에 대해서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내린 거 아쉬워하기 보단 마음을 열고 좋은 점을 잘 즐기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는 어떻게든 제가 내린 커피에 아쉬운 점을 발견하고 말 텐데, 결점이 없는 완벽한 커피를 내리는 것보다 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더 쉽지 않을까요? 하지만 너그러운 커피 브루어가 되는 일 역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역시 브루잉 공부를 더 하는 게 맞겠죠?
보이지 않지만, 커피가 추출되는 중입니다.Ⓒ정아름Joy
그러다 궁금해졌습니다. 종종 커피를 내려 드세요? 그렇다면 어떤 브루잉 생활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저의 커피 브루잉 이야기를 들려 드렸는데,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본인이 내린 커피에 엄격하신 편인가요? 아니면 관대하신 편인가요? 브루잉과 관련된 이야기들 아래에 편하게 남겨주세요!
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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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스냅(snap)'이라는 항목을 보고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펠리페'의 관점도 그렇고 커피뿐 아니라 내가 바라보던 기존의 기준이 다른 것들과도 연결되었을 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겠다는 걸 깨닫게 해주네요. 초콜릿에 대한 글 자체도 잘 읽었지만, 근래 내가 가진 '기준'이 어느새 '선입견'으로 작용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곰곰이하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해 스스로를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준 보석같은 내용도 함께 얻고 갑니다. (김군)
초콜릿도 다양한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페루 행사 비하인드처럼 느껴지는데 가보지 못해서 더욱 아쉽게 생각됩니다. 여러 해외의 커피 문화를 빈브를 통해서 접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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