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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은 에티오피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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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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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예멘 키마 커피(Qima Coffee)를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예멘 커피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인상적인 예멘 커피를 마셔본 경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키마 커피를 관찰하는 이유는 그들이 예멘 커피를 프로모션 하는 방식이 제 관심을 끌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예메니아(Yemenia)라는 새로운 품종 그룹의 발견으로 업계가 떠들썩했죠. '탁월한 퀄리티를 가졌다', '기후변화의 위기에 처한 아라비카의 커피의 미래다' 같은 이야기들이 키마 커피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도 샘플을 받아 커핑을 했는데, 퀄리티가 좋은 커피들이 꽤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저는 다른 품종이 갖지 못한 특성이 있긴 한 건가 싶었습니다. 제가 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죠.
그리고 며칠 전에 키마 커피로부터 펀딩을 받은 한 연구자가 논문을 냈습니다. 137개 아라비카 품종을 조사하여 그 중 얼마나 많은 품종이 예멘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분석한 논문이었습니다. 커피 품종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지요. 그래서 저도 오늘 빠르게 읽어보았는데요. 키마 커피의 펀딩을 받은 점과 논문 내내 느껴지는 편향된 태도가 아쉬웠지만, 꽤 재밌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걸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논문은 조사 대상 137개 품종을 총 5개의 그룹으로 나눕니다. 크게는 예멘과 관련이 없는 두 그룹과 관련이 있는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하나씩 보겠습니다.
(1) Ethiopian Only cluster
에티오피아에서만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룹입니다. 글로벌하게 재배되는 5개의 품종이 여기에 속하는데요. 게이샤(Geisha - T2722), 자바(Java), 치로소(Chiroso), SL-06, 미비리지(Mibrizi)입니다.
게이샤는 따로 설명드릴 필요 없겠죠. 자바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전파한 품종이고요. 치로소는 작년에 콜롬비아 COE 1위를 차지한 품종으로, 현재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품질 포텐셜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SL-06이 재밌습니다. SL이란 이름이 붙어 있으면 왠지 케냐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꼭 그럴 이유는 없습니다. SL 시리즈는 케냐의 Scott Lab이 발굴한 품종이지, 꼭 케냐 토착종인 건 아니기 때문이죠. 미비리지는 르완다나 부룬디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품종입니다. 케냐나 르완다, 부룬디 모두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라서 에티오피아 품종들이 자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2) SL-17 cluster
SL-17로 대표되는 품종 그룹으로, 전세계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예멘에서 유래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품종들입니다. 자연스럽게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요. 이 논문은 꼭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합니다. 에티오피아 동부 산지 Hararghe에서 유래한 품종의 경우 예멘을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케냐 커피에서 자주 보이는 품종들이 눈에 띕니다. SL-14, SL-17, K-7과 같은 품종들이요. SL-14와 SL-17은 가뭄에 강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고, K-7은 켄트(Kent) 품종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3) Yemen SL-34 cluster
여기부터는 예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품종들입니다. SL-09와 SL-34가 대표적이라고 하는데요. SL-09는 작년 페루 COE 1위를 차지하여, 저희에게 인상을 남긴 품종인데 그 유래를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SL-34의 경우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프랑스 선교사들이 예멘에서 본국으로 가져간 품종 중에 하나라고 하고요.
(4) Yemen Typica Bourbon cluster
이 그룹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양대 네임드 아라비카 품종인 티피카와 버번이 들어있거든요. 연구소 커피 SL-28과 켄트, Moka와 같은 품종들도 이 그룹에 속합니다. 티피카와 버번이 중요한 이유는 3세기에 걸쳐 각지에서 재배되며 새로운 아라비카 품종들을 전세계에 전파시켰기 때문입니다. 티피카는 인도를 거쳐 아시아로, 버번은 버번 섬으로 전파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라비카 커피의 부모라고 할 수 있는 티피카와 버번이 예멘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멘 커피의 존재감을 드높이는 일이 되겠죠. 정말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유전자 분석 방법을 이해해야 이 논문의 결과를 의심이라도 해 볼텐데, 아직 저에겐 무리인 것 같습니다.
켄트는 인도에서 선택되어 재배된 품종이라고 합니다. 친숙한 이름 모카의 경우 특정 품종이라기 보단 모카 항구에서 거래되던 커피들에 붙여지던 이름이라 추적이 어려운 듯한데, 일단은 이 그룹에 속하는 모양입니다.
(5) New Yemen cluster
예멘에서만 자랐고,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품종 그룹입니다. 이 논문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메니아 품종 그룹이 여기에 속하는 게 아닐까 추정됩니다.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은 그룹이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이 논문은 이번 연구가 앞으로 수많은 아라비카 커피 품종의 예멘 관련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시작이 될 거라 말하면서 마무리됩니다. 색안경을 끼고 이 논문을 읽긴 했지만, 사실 아라비카 커피 발생지로서 예멘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겠죠. 그리고 키마 커피는 그 사실을 근거로 하여 예멘 커피의 포지션을 에티오피아의 위치로 올리고 싶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들이 성공할 것인지, 성공한다면 그것은 어떤 과정을 통한 것일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과연 그 길의 끝이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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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때때로 그 커피에 대한 글을 씁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좋아해서 언제 한번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에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