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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화이트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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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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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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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벨벳화이트에 대한 생각에 푹 빠져있습니다. 빈브라더스의 고객이던 시절부터 좋아했고, 때때로 기대했던 맛을 내지 못해도 다음 번에 또 주문하게 되는 커피였어요. 매일 말레이시아 PJ매장에 출근하면 머신 앞에 계신 분에게 벨벳화이트 리스트레토 카푸치노를 부탁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3월에 로스터리에 왔고, 지난 1년간은 다양한 커피들을 테이스팅하며 잠시 벨벳화이트를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제가 벨벳화이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커핑팀 멤버가 데릭, 로사, 케이브 3명으로 단촐해진 후에도, 저희는 매주 많은 양의 커피를 테이스팅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마시고 토론한 후에도 구매할 만한 커피를 찾지 못하거나 계속해서 비슷비슷한 커피들만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심적으로 지치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 후보들 중에서 장점을 가진 커피들을 애써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결국 구매 후보에 올려보기도 했죠. 그러다 얼마 전에 로스터리팀 QC에서 벨벳화이트를 마시게 되었을 때, (저의 호들갑을 이해해주신다면) 저는 '와, 비교가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뭘 마셔도, 심지어 이런저런 프로세스를 거친 게이샤를 마셔도 결국 에티오피아 워시드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매우 개인적인 취향이고, 혼자 생각하고 말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성격은 못 되거든요. 최근에 로스터리에서든 스테이지에서든 누가 보일 때마다 벨벳화이트 이야기를 하곤 했죠. 직접적으로 벨벳화이트 좋아하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신 요즘 벨벳화이트 어떠냐고 물어봤고 다양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소이는 저처럼 요즘 벨벳화이트가 너무 맛있다고, 포는 빈브라더스가 라이트 로스팅의 팬덤(aka 식초단)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게 벨벳화이트였던 것 같다고 했어요. 파라는 '요즘 맛있다는 건 그동안 퀄리티 유지가 잘 안 되어서 오히려 문제인 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고, 케이브도 비슷한 우려를 오늘 표현하더라고요.
저는 벨벳화이트가 'BB의 엣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블랙수트의 존재의미를 인정하고, 몰트와 디카페인을 원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의 월간 커피 라인업은 매달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정기배송 고객이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셀렉션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커피도 우리가 만드는 이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만큼 엣지있게 느껴지지 않는 건 제가 편향되었기 때문일까요? 게이샤가 트렌디한 커피라면,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는 저에게 클래식 같은 느낌입니다. 매일 마실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커피인데, 누구나 쉽게 무엇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커피는 흔하지 않습니다.
'벨벳화이트의 베스트 버전'을 두고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작년 8월 경이었나요. 카페 임포츠의 헤일로 베리티를 이제 막 벨벳화이트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에 '베스트 벨벳화이트'를 맛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퀄리티가 하락했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셨죠. 헤일로 베리티는 그렇게 계속 바닥을 치다가 얼마 전에 벨벳화이트의 메인재료 자격을 박탈당하고 나노 겐지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에 반해 수케는 여전히 좋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제가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생두 포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스터리 팀에서는 오랫동안 에티오피아 현지의 포장 퀄리티에 대해서 우려를 가져왔습니다. 로스터리에 도착한 후에 그레인 프로백이 찢어져 있거나 케이블 타이가 풀려있는 경우를 발견하는 게 다반사였다고 해요. 하지만 로스터리에 사람 몇 명 없던 그 시절에 로스터리에 입고되는 모든 생두 포장상태를 점검하고 처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작년 9월에 입고된 에티오피아 수케 100백을 시작으로, 에티오피아 생두 포장상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케이브의 리드 하에 모든 생두백의 수분함량을 측정한 후 수분함량 별로 백을 분류하고, 찢어진 백에 테이핑을 하고 헐거운 케이블 타이를 다시 타이트하게 묶었어요. 케이브, 패트릭, 데릭, 로사, 데미안, 루이(?)가 12시간 동안 작업했는데, 저는 그날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수케가 지금 벨벳화이트의 메인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괜찮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생두 본연의 힘인지, 아니면 우리의 포장 재정비 덕분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발생할 수도 있었던 품질 변화 문제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조치는 앞으로 들어올 에티오피아 생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예정입니다.
우리의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에 대한 이해도와 관리 수준은 계속 좋아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벨벳화이트의 품질 역시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의 수케 재포장작업이 그 시작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벨벳화이트를 경험해오신 여러분들은 어쩌면 아직도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진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말은 쉽고 그 말을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어쩌면 내년 이 맘때쯤 리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하여 다음 커핑은 에티오피아 워시드 최종 라운드입니다. 올해 그리고 내년 초까지 벨벳화이트에 사용하게 될 에티오피아 워시드 생두를 결정하게 되는 커핑입니다. 설렘 반 걱정 반, 아니 사실은 걱정이 더 많지만 부디 좋은 생두를 고를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 마음 속 부동의 1위 벨벳화이트가 그만한 엣지를 올 한해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BB하면 떠오르는 커피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당당하게 벨벳화이트 좋아하시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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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때때로 그 커피에 대한 글을 씁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좋아해서 언제 한번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에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