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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 스터디 (3) 배전도 (Roast Deg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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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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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스터디
로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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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저는 빈브라더스에서 일하기 전까지 배전도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배전도라 함은 배전이 된 정도일텐데, 일본어에서 유래한 듯한 이 어려운 한자어가 커피회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죠. 영어로는 roast degree 혹은 degree of roast 정도될 것입니다.
배전도의 중요성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죠. 똑같은 생두를 다르게 로스팅하고 어떤 사람에게 마시게 한 후, 그 둘이 다른 생두를 로스팅한 것이라고 속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그만큼 배전도는 커피 음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입니다. 개인적으로 작년 9월에 벨벳화이트와 헤일로 베리티를 비교하며 배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배전도가 얼마냐는 것은 커피를 하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떤 커피가 얼마나 로스팅되었는지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원두의 색깔입니다. 특별히 장비를 사용하여 측정하지 않아도 우리는 원두의 색깔을 보며 그 커피가 얼마나 로스티(roasty)할지 판단할 수 있고, 그것은 꽤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스터리팀이 바리스타팀과 이야기할 때 색깔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유기물 손실률'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합니다. 듣고 바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일단 유기물이 뭔지 잘 모르겠고, '손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로스터리 공지 채널을 유심히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이미 유기물 손실률의 개념을 잘 알고 계시겠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글에서 기초부터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우선, 유기물이라는 단어에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유기물은 탄소를 갖고 있는 물질을 말하죠. 사실 예외도 있습니다. 생명과 관련이 없는 물질들은 탄소를 갖고 있어도 유기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산화탄소(CO2)가 그 예입니다.
어려우시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 유기물을 먹고 있습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필수 영양소가 대표적인 유기물입니다. 커피도 과일이기에 그 성분이 우리가 먹는 음식물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탄수화물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를 단백질, 지방, 여러 가지 산, 카페인 등이 차지합니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상업화된 코페아(coffea)의 양대산맥인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경우 성분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로마를 담당하는 지질(lipid) 성분의 경우 아라비카가 좀 더 많은 편이고, 쓴맛을 가진 클로로겐산은 로부스타가 좀 더 많이 가진 편입니다.
유기물에 대해 아는 게 바닥이 나서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기물 손실률이란 것은 결국 이러한 유기물들이 로스팅 과정 중에 얼마나 손실되었느냐인 거겠죠. 그런데 이 숫자가 말이죠. 그렇게 투명한 숫자가 아닙니다.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에요.
어떤 커피의 유기물 손실률이 7%라고 할 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7%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 값을 계산하는지 보면 이해하실 수 있어요. 생두의 질량을 100이라고 해볼게요. 로스팅을 하고 나니 질량이 85이 되었습니다. 총 15만큼 질량이 줄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감소분 중에 8이 수분이었대요. 수분을 제외한 감소분은 7이고, 이것이 바로 유기물 손실률입니다. 손실된 물질 중에 물을 제외한 것은 모두 유기물이라고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기물을 하나하나 따져서 얼마나 줄었는지 측정하고 그것을 모두 합한 값이 아니란 얘기예요. 10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아로마 물질들의 로스팅 전후 질량을 측정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겠죠. 그리고 이건 따로 다룰 만한 이야기지만, 특정 물질이 인간에게 어떤 감각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저는 유기물 손실률이 배전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로스터리에서 패트릭이 신들린 손놀림으로 로스팅 시간을 달리하면서도 유기물 손실률을 비슷하게 한 여러 배치의 벨벳화이트를 로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테이스팅 결과, 플레이버 프로파일의 차이가 꽤 분명해서 숙련된 커퍼라면 누구나 구분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추정이지만, 각 배치의 유기물 손실률 3.6%를 구성하는 요소에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생두가 비슷한 유기물 손실률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컵 프로파일을 띌 수 있는데, 하물며 다른 생두라면 어떨까요. 그래서 저는 특정 유기물 손실률을 모든 생두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기물 손실률이 4%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로스티(roasty) 플레이버를 가질 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에티오피아 나노 찰라의 4%와 콜롬비아 라 디비사의 4%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유기물 손실률의 비교는 같은 생두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유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불완전한 유기물 손실률로 지금까지 배전도를 판단한 것이냐고 물어보실 차례입니다. 저의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물 손실률은 꽤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입니다. 숫자의 힘은 생각보다 셉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시나몬, 풀 시티, 프렌치 로스트와 같은 단어에서 우리가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요. 사실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부터가 문제일 것입니다.
그에 비해 유기물 손실률은 명쾌합니다. 로스팅 후 감소한 질량에서 수분 감소분을 빼는 것. 처음에는 낯설지만, 이해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죠. 로스팅이 과학이 되기 위해선 이렇게 누구나 똑같이 측정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했고, 누군가가 그것을 고안했습니다.
로스터리 팀도 유기물 손실률의 효용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분석할 때 색깔을 같이 보죠. 컬러트랙이라는 색도계를 이용하여 원두(whole bean)와 분쇄두(ground bean)의 색깔을 측정하고 비교합니다. 저는 원두와 분쇄두의 색깔 차이를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유기물 손실률로 알 수 없었던 정보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두 가지 벨벳화이트 A와 B가 있다고 해 볼게요. 테이스팅을 해 보았더니 A가 B에 비해서 좀 더 카라멜 향미가 나는 것 같습니다. 유기물 손실률을 보니 둘 다 3.6% 정도로 비슷합니다. 하지만 A는 B에 비해서 원두 색깔은 다크(A 62 > B 61) 하지만 분쇄두의 색깔은 오히려 라이트(A 57 <  B 58)합니다. 이때 저는 A의 원두 바깥 부분이 B보다 더 많이 로스팅되면서 카라멜스러운 향이 더 많이 생긴 게 아닐까 추측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보류하고 있지만요.
이렇게 로스터리에서는 유기물 손실률과 색깔을 함께 고려하여 커피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로스터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배치의 로스팅 프로파일을 비교하면서 어떤 지점에서 우리가 바라는 대로 로스팅이 되지 않은 것인지 혹은 예상치 못하게 잘 된 것인지를 판단하고요.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로스팅의 변수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로스팅은 정교해질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로스팅 데이터를 측정하지 않고 로스팅 공정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겠죠. 오래 해온 감이란 것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예술의 영역일 것입니다.

Q&A : 수분함량 측정원리

제이스, 좋은 질문입니다! 완벽히는 어렵겠지만 제가 어느 정도는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스터리에서 사용하는 수분 측정기인 Sinar Beanpro의 측정원리에 대해선 제가 이 노션 페이지에 예전에 정리해둔 게 있어서 보시면 되는데요. 조금 어려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어떤 물체의 수분을 측정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가열하여 수분을 증발시킨 후 질량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물체의 전기적 성질을 활용하여 그에 대응하는 수분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Sinar Beanpro의 경우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열하는 방법은 단순하고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시간이 오래 걸리고요. 가열과정에서 수분만 증발할 것이라고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커피 생두 같은 경우는 로스팅이 되어버리겠죠. 그래서 정밀한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Sina Beanpro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기적 성질을 이용하여 수분을 측정하는가 궁금하실텐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물리학을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알고 있어서 이해도가 높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한 만큼만 설명해 볼게요. 실제로 업체랑 확인해본 내용이 아니고, 상당 부분은 제가 추정하는 내용임을 참고해 주세요.
물리학에는 유전상수(dielectric constant or relative permittiv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진공일 때에 비해서 얼마나 전하를 잘 보관하는지를 나타내는 물질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종이는 진공 대비 3배, 고무는 7배 정도로 전하를 잘 저장한다고 하고요. 우리가 궁금한 물은 진공의 80배 정도라고 합니다.
커피 생두의 경우 전체 질량의 대략 10% 정도가 수분입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고체일테고, 추정컨대 물에 비해서 유전상수가 많이 낮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수분 함량이 얼마인지가 커피 생두의 전하를 보관하는 능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고요. Sina Beanpro는 생두 샘플에 전기장을 작용해서 기준 샘플 대비 어느 정도의 전하를 보관하는지 측정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수분함량을 계산해내는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준 샘플은 밀(wheat)입니다. 놀랍게도 커피가 아니죠. 그래서 Sina Beanpro가 어느 정도의 정확도로 수분 함량을 측정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구매한 생두의 수분함량값을 생두업체의 측정값과 비교해본 적이 있는데 매칭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혹시 측정 장비의 차이가 원인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장비로 측정한 수분함량을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우리가 측정한 값들을 주로 비교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장비의 작동 원리는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동 방법은 놀랄 만큼 간단합니다. 다음에 로스터리 방문하시면 어떻게 측정하는지 한번 들여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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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벨벳화이트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