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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 노트는 어떻게 정해질까?

작성자
발행일
2021/07/05
Tags
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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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 노트의 필요성

여러분은 지금 온라인으로 이번 달에 마실 커피를 주문하려는 참입니다. 이런, 그런데 커피에 테이스팅 노트가 안 적혀 있네요. 이럴 때는 어떤 기준으로 커피를 골라야 할까요?
별수 없이 커피산지와 품종, 가공방식 정보를 이용하여 어떤 맛일지 추측해야 할텐데요. 이것은 커피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커피산지와 가공방식을 알고 있으면 어느 정도 큰 카테고리는 예상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향미를 갖고 있을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게이샤와 같은 몇몇 품종을 제외하면, 커피품종 정보는 사실상 맛에 대한 정보를 거의 담고 있지 않죠.
커피에 테이스팅 노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테이스팅 노트는 그 커피를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혹은 마시는 사람이 어떤 노트를 커피에서 찾아보면 좋을지에 대한 가이드입니다. 고작 몇 개의 단어만으로 어떤 커피 경험을 하게 될지 예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커피의 테이스팅 노트를 정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한번 시도해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워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작업이 아니기도 하죠. 이 글에서는 빈브라더스 커피의 테이스팅 노트가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이드 커핑

빈브라더스의 슬로건은 '당신의 커피 가이드(Your Personal Coffee Guide)'입니다. 여러분의 커피 가이드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먼저 우리 스스로 커피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야 하고, 어떻게 여러분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스터리에서는 매달 '가이드 커핑'이란 것을 합니다. 로스터 케이브, 생두 코디네이터 로사, 연구원 데릭, 바리스타 제이스가 만나서 곧 출시될 커피를 테이스팅합니다. 누가 어떻게 재배하고 가공한 커피인지, 어떻게 로스팅하는 것이 최적일지, 어떤 향미를 가진 커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원두카드 뒷면에 그 커피에 대한 소개글이 들어가는데 가이드 커핑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주요 소스가 됩니다.
커피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나면 이제 테이스팅 노트를 정해야 하는데 이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커피를 마시고 느껴지는 노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미각을 가졌는지, 그동안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살아왔는지에 따라서 사람마다 떠올리는 노트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미션은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트를 찾고 그 중에서 흥미로운 것들을 추리는 일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요?

테이스팅 노트 정하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평균적인 입맛을 가진 한국인'을 찾아서 어떤 노트가 느껴지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테이스팅 노트를 찾아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준비한 노트를 알려주고 잘 느껴지는지 여부를 확인해보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느냐는 둘째치고 '한국인의 평균적인 입맛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택하기 어려운 방법이란 뜻입니다.
빈브라더스팀이 택한 방법은 팀내 숙련된 커퍼들의 테이스팅 노트를 먼저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피를 들고 로스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테이스팅을 요청합니다. 빈브라더스 커피의 생산과 출고를 담당하는 물류팀, 우연히 로스터리를 방문한 바리스타팀과 오피스팀 모두가 타겟이 됩니다. 테이스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도 점점 대답 가능한 형태로 변해갑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테이스팅 노트의 초안이 완성돼요.
여러 사람이 공감한다고 해서 바로 그 커피의 테이스팅 노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커피의 테이스팅 노트는 그 커피를 잘 표현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노트를 보고 커피를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의 호감과 흥미로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마케팅팀에서 이 부분을 검토합니다. 로스터리팀에 이 노트가 실제로 고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에 대한 검토 결과가 전달되고, 문제가 없을 경우 최종 테이스팅 노트로 확정이 됩니다.

세상으로 나온 테이스팅 노트

이제 테이스팅 노트가 세상으로 나올 시간입니다. 원두카드라는 배에 실린 채로 커피를 구매하는 고객들을 만나게 돼요. 빈브라더스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서 원두를 구매하신 고객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빈브라더스 매장을 방문해주신 고객들은 각 매장에서 커피와 함께 원두카드를 받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공감을 하면서, 다른 어떤 분들은 갸우뚱하면서 테이스팅 노트를 읽으실 거예요.
모든 분들이 원두카드에 적힌 테이스팅 노트를 공감하시길 바라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외국에서 나고 자란 고객의 경우 한국인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 테이스팅 노트가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요. '잘 안 느껴지네'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데 이 테이스팅 노트를 만든 사람은 왜 그렇게 느꼈을까'하고 궁금해할 수도 있을 거예요.
바로 여기가 테이스팅 노트가 예상치 못하게 활용되는 지점입니다. 잘 연상되지 않는 테이스팅 노트를 만났을 때 마음을 조금 열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라즈베리 노트가 잘 느껴지지 않으면, 향이 아니라 산미를 언급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미국 로스터리의 커피를 맛 보았는데, 살구 노트가 공감되지 않으면 '미국 살구와 한국 살구의 향이 다른가?'하고 실제로 미국 살구를 찾아 먹어볼 수도 있죠. 일본 로스터리의 커피에서 종종 보이는 Umami라는 노트는 커피에서 진짜로 감칠맛이 나는지 느껴보게 합니다. 미각의 스펙트럼이 이런 과정들을 통해 확장되기도 합니다.
아래는 빈브라더스에서 7월에 소개하는 세 가지 커피의 원두카드 앞면입니다. 오른쪽 아래를 보시면 각 커피의 테이스팅 노트가 적혀 있어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한 노트들인지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죠? 여러분들께 공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아무쪼록 커피를 즐기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거는 다 누가 정하는 거예요? 정말 여기 쓰여진 그대로 느껴져서 너무 신기해요!' 일테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겸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반응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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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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