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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비 커피농부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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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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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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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농장을 바라보는 농부 | 사진 출처 : Indian Visit
여러분은 곧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던 커피 농장을 인수하기에 충분한 돈도 모았어요. 남은 것은 은퇴 후에 시작될 커피 농부로서의 삶을 잘 계획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떤 커피를, 어떻게 재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지요.
먼저 '어디서'라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의 기후는 커피 농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커피 벨트에 위치한 나라들 중에 골라야 합니다. 아라비카 커피의 발생지인 에티오피아나 옆나라 케냐는 어떨까요? 커피산지의 명성을 활용할 수 있고, 커피 녹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삶과 사뭇 다르겠죠. 코스타리카나 콜롬비아 같은 중남미 국가는 어떨까요? 전세계에서 가공방식이 가장 발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매력적인 곳들이지만, 두 나라의 치안 수준을 생각하면 외지인으로서 안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완벽한 커피 산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워서, 본인의 우선순위를 고려했을 때 최적인 곳을 선택해야 할 거예요.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어디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 커피를 재배할 것인가'에 이르렀어요. 업계의 슈퍼스타 '게이샤'를 재배할 수도 있고, 커피 녹병에 저항력이 있는 '카스티요' 같은 품종을 재배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농장의 품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빈브라더스의 오랜 파트너인 미카바 농장의 폴 도일(Paul Doyle)은 콜롬비아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미국인입니다. 그가 농장을 인수하고 한 결정은 기존에 심어져 있던 커피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게이샤 나무를 새로 심은 것이었어요. 여러분도 그동안 재배하고 싶었던 커피 나무를 심으면 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주어진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재배할 것인가'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가공방식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커피의 최종 플레이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커피 씨앗 본연의 향미를 잘 표현하는 워시드 프로세스와 커피에 과일 향미를 더해주는 내추럴 프로세스가 대표적이지요. 이미 하나의 가공방식으로 잘 자리잡은 허니 프로세스는 워시드와 내추럴의 장점을 모두 취하고 싶은 농부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 '잘 팔리는' 방식도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시대의 커피 농부들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가공방식 외에도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독특한 방식으로 커피를 발효하는 것입니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생두를 무산소 환경에 일정기간 보관하는 방식이 주류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ONA 커피의 사샤 세스틱(Sasa Sestic)이 커피에 적용하고 있는 탄소침용법(Carbonic Maceration)이 대표적입니다. 무산소 환경에서 온도나 pH 같은 변수들을 잘 통제하여 미생물들의 대사를 진행시키고, 결과적으로 원하는 플레이버를 커피에 부여하는 방식인데요. 게이샤와 같은 하이엔드 품종에도 적용되지만, 낮은 고도에서 재배된 평범한 커피의 향미를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선택지는 몇 년 전 업계에서 '시나몬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큰 화제가 된 가향 커피(infused coffee)입니다. 커피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특정 향미를 내는 성분을 첨가하는 것입니다. 난이도가 높고 결과의 불확실성이 큰 무산소 가공에 비해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지요. 선명한 망고 노트의 케냐 커피, 향긋한 장미 노트의 게이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발효 탱크에 망고즙을 짜 넣거나 로즈 에센셜 오일을 넣어보는 겁니다. 커피는 흡향을 잘하는 특성이 있어서 냉장고에 넣어 악취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누군가는 아예 커피가 가졌으면 하는 향을 직접 입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커피에 직접 향을 입히는 것은 지난 몇 년 간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공방식입니다. 사샤 세스틱을 비롯한 비판자들이 주로 지적하는 것은 특정 가향 커피들의 불투명한 정보예요. 가향 사실을 밝히지 않은 커피들이 커피 대회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시장에서 고객의 사랑을 받게 될 현실을 걱정하고 있지요. 사샤 세스틱의 주장은 당당하게 가향 사실을 밝히고 공정하게 대결하자는 것입니다. 글에서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사람들이 가향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을 모를 때와는 다르게 커피를 평가할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합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천연과 인공의 대비는 식음료 업계에서 종종 등장하는 떡밥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에 있었던 MSG를 둘러싼 논란일텐데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여러 식당들의 MSG 사용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었죠. 미국의 식약처인 FDA를 비롯한 많은 보건기구들이 현재의 조미료 사용량 수준에서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유해성 논란은 일단락되었고, MSG 사용에 대한 판단은 개인에게 맡기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음식 맛을 더 내기 위해 약간의 MSG를 첨가하는 것에 대해서 예전만큼의 거부감은 없는 느낌이에요.
저는 가향 커피도 MSG와 비슷한 길을 가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감칠맛을 더해주는 MSG와 직접적으로 향을 입히는 가향은 다르지 않냐고 반문하실 수 있고 타당한 지적입니다. 어쩌면 합성착향료와 비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인식과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향 커피와 MSG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어갔는지 여부에 대한 '인식'이 맛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용량이 지나칠 경우에는 인공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정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긍정적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현재 가향 커피의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겨지는 정보의 불투명성이 해결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과도하고 인위적인 향미'로 논의가 옮겨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많은 생산자들이 가향의 적절한 지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소비자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가향 커피가 그렇지 않은 가향 커피보다 많아지는 날, 가향 커피는 하나의 커피 장르로서 지금보다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워시드와 내추럴 커피를 더 자주 마실 것 같지만요.
시나몬 게이트 이후 잠잠했던 가향 커피 논란이 최근에 다시 불거져 나온 것은 어느덧 꽤 많은 생산자들이 활발하게 가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샤 세스틱은 전세계 스페셜티 커피 업계 사람들에게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가향 커피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논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산자들이 가향 여부를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이 논의가 사샤 세스틱의 토로에 그칠지 아니면 업계 종사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 가향 커피에 대한 의미있는 액션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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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