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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커핑 세션 (2020)

작성자
발행일
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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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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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떤 커핑의 커피 퀄리티가 좋았었는지 한번 생각해봤는데, 그건 그리 재밌는 주제가 아니더라구요. 왜냐면 좋았던 커피들은 대부분 올해 월간커피로 소개를 하거나 COE 리뷰를 통해서 이미 여러분께 이야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제를 바꾸어 우리에게 실질적인 임팩트가 있었던 세 개의 커핑 세션을 선정하고, 그것들을 여러분과 함께 돌아보려고 합니다.

옆집 커피 테이스팅 - 팀 윈들보(Tim Wendelboe)

제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세션은, 팀 윈들보 테이스팅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기 때문일텐데요. 올해 진행한 여러 번의 옆집커피 테이스팅 세션 중에서도 저는 3월에 있었던 팀 윈들보 테이스팅이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스몰배치(Small Batch Roasting), 오닉스(Onyx Coffee Lab), 오나(ONA Coffee)와 같은 해외 로스터리와 모모스, 프릳츠, 커피 리브레 등의 국내 로스터리의 제품들도 맛 보았고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지금 돌아봤을 때 팀 윈들보 만한 임팩트는 없지 않았나 싶어요.
커피가 얼마나 좋았길래? 라고 묻고 싶으시겠지만, 죄송하게도 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테이스팅을 진행한 3월 18일에는 저는 이제 막 로스터리에 조인한 초보 커퍼로서 커피를 제대로 평가할 만한 실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테이스팅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높은 집중력과 토론 시간에 오가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가 핵심이겠죠. 케이브가 우리가 구매한 모든 팀 윈들보 커피의 컬러를 측정했었는데요. 홀빈의 경우 벨벳화이트와 비슷한 수준(59~60)인데, 그라운드 빈의 컬러가 꽤 라이트(필터용 : 55~57)했습니다. 그 당시 BB 커피 라인업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정도의 컬러였던 것 같아요. 거칠게 말해서 우리보다 라이트한 로스팅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라이트 로스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점을 보통 걱정하게 되나요? 풋내가 나거나 산미가 강하거나 하는 게 대표적인 우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팀 윈들보의 커피에선 그런 결점들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스팅 관련 서적을 보면 로스팅 중에 산미가 절정에 이르고 다시 줄어드는 지점이 있다고 하죠. 그래서 로스팅을 그 전에 끝낸다면 커피 본연의 향미는 최대한 살리면서도 비교적 편안한 산미를 갖는 게 아닌가, 소위 노르딕 로스팅이란 게 이런 방법론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토론 중에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이 방법론을 우리 싱글 커피에 적용해보기로 합니다. 그 결과물이 5월 싱글 에티오피아 베켈레 레게이 그리고 6월 싱글 르완다 버프 우무라지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올해 BB 커피 중에 가장 유기물 손실률이 낮은 2.5~3% 대의 커피였을 거예요. 어떤 커피였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솔직히 저는 기억이 흐릿합니다. 베켈레 레게이의 경우 그라인더에서 분쇄가 안 된다는 고객 클레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저는 노르웨이의 홈 브루어들은 다들 성능이 좋은 그라인더를 집에 구비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어떤 테이스팅 세션이 1) 커피도 좋고 2) 토론에서 끌어낼 인사이트도 있고 3) 그 인사이트를 실제 우리 제품에 적용하게 하기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커피만 좋아도 우리의 시간과 미각(palate)을 낭비하지는 않은 것 같아 감사하죠. 그런 점에서 저에게 팀 윈들보는 올해 옆집커피 테이스팅 세션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배전도별 테이스팅 - 브라질 볼타 다 세하

두 번째는 올해 8월 경에 브라질 볼타 다 세하(Volta Da Serra) 원두를 사용해 진행한 배전도별 테이스팅입니다. 사실 로스터리에서는 2019년에 이미 진행한 적이 있는 테스트여서 굳이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 말에 생두 샘플 비수기가 찾아왔고, 주간커핑에 사용할 원두가 없는 상황이라 케이브가 고마운 제안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바리스타팀에서 주간 커핑을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충분한 양을 로스팅해서 각 스테이지로 보내기로 했었고요.
그렇게 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는 평소와 다르게 로스팅된 원두를 실제로 테이블에 깔고, 눈으로 보면서 커핑할 수 있도록 커피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유기물 손실률이 변화함에 따라 신맛/단맛/쓴맛/바디/노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각자 기록하고 비교하기로 했죠. 그 결과는 이 리포트로 여러분들께 공유드린 바 있습니다.
실제로 해 보니까, 이만한 교육 프로그램이 또 없더라고요. 평상시 우리가 BB에서 만나게 되는 커피들의 유기물 손실률은 특정 범위 안에 있게 마련이죠. 블랙수트(약 7%)와 몰트(약 7%), 디카페인(약 6%)이 비교적 높은 편이고, 일반 싱글들은 대개 3~5% 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스타벅스 정도는 가야 블랙수트보다 높은 배전도의 커피를 마시게 되고, 팀 윈들보 정도 마셔야 우리 싱글들보다 라이트한 커피를 만날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같은 생두로 로스팅한 다른 유기물 손실률(1%~10%)의 샘플을 한 테이블에 놓고 마셔보니까, 이게 커피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글로 읽었던 것들이 혀에 느껴지면서 진짜 내 지식이 되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것 같아요.
케이브와 로사가 열심히 소분포장해서 스테이지에 원두를 보내 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과 슬랙에서 그 샘플들에 대한 테이스팅 리뷰가 올라왔습니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뿌듯했고, 올려주신 내용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테이스팅 세션을 통해 우리가 뭔가를 배우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로스터리와 스테이지간의 생산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배전도별 테스트를 올해 가장 인상적인 커핑 중의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로스팅 머신별 테이스팅 - 로링(Loring), 프로밧(Probat), 로스트(Roest)

제가 선정한 마지막 커핑은 로스팅 머신별 테이스팅입니다. 어느 테이스팅이나 케이브가 고생을 하지 않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만, 이 테이스팅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로스팅 머신을 사용하기 위해서 다른 업체에 어레인지하고, 실제로 가서 로스팅을 해야했거든요. 테스트 대상 로스팅 머신은 우리가 보유한 로링과 프로밧 샘플로스터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던 로스트와 신형 프로밧 샘플로스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만만한 테스트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유기물 손실률이란 숫자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오랫동안 프로밧 샘플로스터와 로링 로스터를 사용하면서 알게 된 것은 같은 유기물 손실률이 나오게 로스팅을 해도 두 머신은 자주 다른 컵 프로파일의 커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의 머신으로도 얼마든지 유기물 손실률이 같으면서도 컵 프로파일에 차이가 나는 커피를 로스팅할 수가 있긴 하죠. 만약에 열전달 방식이 다른 머신이라면 더 큰 차이가 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우리가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준이 필요했고, 로링의 로스팅 기준(로스팅 시간, 유기물 손실률)을 각 머신에 적용하여 로스팅하기로 했습니다. 테이스팅 결과, 각 머신의 특성은 어느 정도 느껴지는데 그 머신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로스팅을 진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어느 머신이 우월하다라고 평가하기에 애매한 면이 있다는 결론이었죠. 그렇지만 실제로 그 머신들을 사용하고 그 결과물을 테이스팅해보면서 각 로스팅 머신들에 대한 배움이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테이스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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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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