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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동안 커피 디개싱에 대해 알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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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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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스터디
디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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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커피 디개싱이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년 12월부터 로스터리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블랙수트와 벨벳화이트에 대한 디개싱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두 가지 시그니처 블렌드의 상미기한을 알아보자' 라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요.
어제 부로 모든 테스트가 끝났습니다. '테스트 결과, 블랙수트는 2주까지, 벨벳화이트는 3주까지만 판매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멋지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3차에 걸친 테스트를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 알기 어렵다'입니다. 그래도 제가 이 세 번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고민하여 무엇을 배웠는지 정도는 같이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용기내어)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커피 디개싱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볼게요. 디개싱(Degassing)이란 용어는 낯선 단어입니다. 저는 일상생활에서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gas 앞에 de가 붙어 있는데, 보통 영어에서 de-는 뭔가 없어지는 느낌이죠. 대표적인 게 디카페인(decaffeine)일 거예요. 그래서 디개싱이란 말의 뜻도 '가스가 없어지다' 정도가 됩니다.
커피의 가스가 없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요. 이미 잘 알고 계실 내용을 설명하자니 조금 민망하지만, 커피는 기본적으로 구멍이 뿅뿅 뚫려있는 구조입니다. 상식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안에 가스가 들어있다는 게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그 구멍 크기가 워낙에 작기 때문에 분자량이 큰 기체들의 경우 그 안에 갇힐 수 있는 것이죠.
사족이지만,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테이블도 단단해서 틈이 없어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텅 비어있는 공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테이블이 물건을 지탱할 수 있는 건 둘 사이에 밀어내는 전자기력이 작동하기 때문이지, 그게 어떤 물질로 막혀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이 정도까지밖에 몰라서 물리학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커피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생두 안에 갇혀 있는 기체가 비로소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건 로스팅 때문입니다. 직접 본 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생두는 로스팅이 끝난 후에는 크기가 두세 배 가까이로 커지죠. 틈이 좁아서 나오지 못하던 가스들이 신나서 나오게 되는 순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커피가 특정 기체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디개싱이 발생하는 동안 우리의 센서리 테이스팅은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최대한 신선할 때 마시는 게 좋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에이징을 한 후에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상미기한은 커피마다 다르다고 말하기도 하죠.
아예 근거가 없는 설명들은 아닐 거예요.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나요. 2-3주 지난 벨벳화이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을 때, 며칠 전까지 멀쩡하던 게이샤가 오늘 마시니 그 훌륭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순간들이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이론을 수립하게 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 로스터리에서 진행한 테스트 이야기를 할 시간입니다. 먼저, 이 테스트가 너무나 어려웠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디개싱 테스트라는 것은 각 샘플의 1) 생두간 품질 차이가 없고 2) 로스팅이 일관되며 3) 추출이 일정하고 4) 평가자가 신뢰도 높은 평가를 한다는 전제하에 비로소 어떠한 결론을 낼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3번 정도를 빼고 나머지를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슈였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야심만만하게 아래와 같은 세 종류의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1. 로스팅 당일(혹은 +1일)부터 +4주까지의 블랙수트/벨벳화이트를 1주 간격으로 한 테이블에 놓고 블라인드로 비교 평가한다. 배치간에 로스팅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결과 토론 시 로스팅 데이터도 같이 논의한다.
(결과)
블랙수트의 경우 4주 경과 제품이 다른 제품들 대비 유의미하게 낮은 평가를 받았고, +3일부터 3주 경과제품까지는 평가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벨벳화이트는 3주와 4주 경과된 제품이 로스팅 경과시간이 짧은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1일 경과한 제품의 로스팅이 당일 한파로 인해 평소와 다르게 진행되어 로스팅 물성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어서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2. 동일 배치의 블랙수트/벨벳화이트를 동일한 평가자 4명이 4주 동안 주 2회 같은 시간대에 평가한다. 블라인드 평가가 아니지만, 적어도 로스팅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으므로(=동일 배치이므로) 1번 테스트를 보완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진행한다.
(결과)
블랙수트의 경우 11일 경과 후부터 부정적인 노트(기름향, 오일리향, 단조로움)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보다 시간이 더 경과한 샘플들에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아서, 디개싱의 효과라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공교롭게 그날만 여러 평가자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했던 것일까요? 물음표만 남았습니다.
벨벳화이트는 22일 경과 후부터 꽃과 시트러스 향이 약하게 느껴진다는 언급 등장했지만, 25일 경과 제품도 컵 퀄리티만 따졌을 때 판매 불가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되었습니다.
3. 특정 배치의 블랙수트/벨벳화이트를 레퍼런스로 삼고, 4주 동안 로스팅한 지 1-2일이 된 샘플로 매주 트라이앵글 테스트를 한다. 포인트는 로스팅한 지 1-2일된 샘플과 3주 혹은 4주 경과된 샘플을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
(결과)
평가자가 3명으로 모수가 부족하여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3명 모두 다른 평가 결과를 보였어요. 대체로 벨벳화이트를 더 잘 구분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3명의 평가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로스팅 후 경과시간이 늘어날수록, 예를 들어 당일과 4주 경과한 제품을 가장 손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모수를 충분히 늘려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간단하게 요약 드렸지만, 사실 정말 많은 고민과 그것에 대한 토론을 했던 테스트들이었습니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고요.
이 테스트를 진행하기 전에 몇 가지 논문을 참고했는데, 그 중에서도 SCA의 Coffee Freshness Handbook을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2012년에 로스터스 길드에서 참여한 디개싱 테스트를 인용합니다. 50개 지역에 살고 있는 60명의 숙련된 커퍼들에게 같은 샘플을 보내주고 관능평가를 하게 했습니다. 우리처럼 4주까지가 아니라 50여일까지 경과시킨 후 평가하는 테스트였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X축이 시간이고, Y축이 평가자들이 같은 샘플에 매긴 커핑 스코어입니다. 딱 봐도 엄청난 편차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추세선을 그어서 로스팅 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커핑 스코어가 낮아졌다, 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 그것이 얼마나 신뢰도 있는 결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 그림의 추세선을 자세히 보시면 50여일 경과 후 브라질은 스코어 하락폭이 10점 가까이 되고, 콜롬비아와 르완다의 경우 3점 내외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평가자들의 스코어링이 서로 같은 기준으로 진행되었다는 전제가 가능하다면, 이것은 꽤 의미있는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우리가 테스트한 정도인 30일에서 끊어본다면, 그 차이가 상당히 작아집니다. 눈짐작으로 보건대, 브라질은 3점 정도 하락, 콜롬비아와 르완다는 1점 정도 하락한 걸로 보이는데요. 이걸 트라이앵글로 구분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이 테스트 결과를 보고 우리가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설정했던 4주조차도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시간간격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어스가 블랙워터이슈에 기고한 디개싱 리포트를 보면, 당일부터 11일까지 샘플의 맛과 향의 성향이 비슷하여 구별이 어려웠다는 언급이 있죠. 4주까지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나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입니다. 어쩌면 8주까지 테스트를 하고 나면 또 다른 관점으로 디개싱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업계에서 디개싱에 대한 논란이 오랫동안 분분한데도 아직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설명이 없는 것은 어쩌면 관능평가가 이토록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요. 그렇게 한다 해도 명확한 결론을 낼 거라 장담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커피 A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커피 B에도 적용될 거라 말하긴 어려우니까요. 제가 세 차례의 디개싱 테스트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건 기계가 할 일이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계는 특정 물질의 농도를 사람보다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특정 물질이 사람에게 어떤 감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지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계만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 또한 어떤 향미 물질이 감각기관에 어떤 자극으로 인지되는지 잘 알고 있지 못하죠. 너무나 정교한 분석 시스템을 몸에 갖추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저의 추정이지만 아마도 '물질 A는 꽃향만 내고, 물질 B는 단맛만 갖고 있고, 물질 C는 떫은 감각반응만 일으키는 케이스'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커피 음료에 들어 있는 향미물질이 8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이걸 다 분석할 수 있게 될까요. 이 작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계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세 차례의 디개싱 테스트를 통해 커피 디개싱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관능평가는 특정 원두의 상미기한을 정하는 최적의 방법이 아닌 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상미기한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기대하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죄송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제가 여기에 더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하루하루 커피가 달라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로스팅 경과 시간 차이가 하루라고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지지만, 그 하루가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는 것일테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SCA의 The Coffee Freshness Handbook은 꼭 구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챕터14 (Protecting the Flavors - Freshness as a Key to Quality)를 같이 읽으셔도 좋아요. 이 정도만 읽어도 커피 디개싱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은 대략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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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때때로 그 커피에 대한 글을 씁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좋아해서 언제 한번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에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