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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 스터디 (1) RoR (Rate of 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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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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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ster에 기록된 로스팅 프로파일을 보며 토론하는 케이브와 패트릭
로스팅 스터디의 첫 주제는 RoR(Rate of Rise)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올라가는 속도' 정도 될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고, 대략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로스팅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커피 로스팅을 정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것은 '생두의 온도를 올리는 일'이라는 정의였습니다. 정말 그러합니다. 다양한 유형의 로스팅 머신이 존재하지만 결국 목적은 생두의 온도를 원하는 지점까지 올리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온도를 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는 일입니다. 그외에도 기존에 일어나지 않았던 반응을 일어나게 하거나 물질의 상태를 변화시키기도 하죠.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마이야르 반응,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물이 수증기로 기화하는 것입니다.
생두의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여러 가지 물리적 /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고, 풋내나던 씨앗들이 비로소 우리가 아는 커피다운 커피가 됩니다. 그리고 로스팅은 그 과정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진행하는 것이고, 그 설계의 대상은 바로 '온도변화'입니다. 즉, 생두의 온도를 몇 도까지, 어떤 속도로 올릴 것인가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이죠.
여기서 '온도를 어떤 속도로 올릴 것인가'가 뜻하는 것이 바로 RoR입니다. 아직까지도 많이 낯선 개념일 수 있는데요. 본격적인 RoR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우리 로링 로스터기의 온도 측정 방법을 설명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커피의 온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스테이크의 온도를 측정하는 방법과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스테이크는 고기에 직접 온도계를 꽂으면 되지만, 로스팅 챔버 안에는 십만 알이 넘는 생두가 들어있으니 모든 커피 생두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로스터기는 생두가 접촉하게 되는 특정 지점에 온도 측정센서를 놓고 그 데이터를 컴퓨터로 송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로스팅 앱 크롭스터(Cropster)를 사용할 때 보게 되는 Bean Temperature가 사실은 커피의 온도는 아닌 것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로스팅 서적에서는 편의상 커피 온도라고 설명하고, 저 역시도 이 글에서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제 커피 온도의 측정 방식을 알았으니 로스팅 프로파일을 하나 보겠습니다. 아래 그림중 파랑색이 블랙수트고 빨강색이 벨벳화이트입니다. 가로축은 로스팅 경과시간이고 세로축은 온도고요. 벨벳화이트의 로스팅 시간이 블랙수트보다 짧다는 것이 제 눈에 먼저 들어오네요.
그래프에서 우상향하는 선이 바로 로스팅 챔버 안에서 측정하고 있는 온도입니다. 블랙수트든 벨벳화이트든 둘 다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가죠. 지속적으로 열량을 가하고 있는데 온도가 오르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벨벳화이트(빨강)와 블랙수트(파랑)의 올라가는 양상에 어떤 차이점이 보이시나요? 맞습니다. 벨벳화이트의 온도가 더 급격하게 상승했죠. 이 사실은 온도 그래프를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좌하향하는 선인 RoR 그래프를 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커피 로스팅에서 주로 말하는 RoR은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라고 하였습니다. 이 그래프의 RoR은 1분에 온도가 몇 도 변하느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벨벳화이트의 경우 RoR이 최고일 때 1분에 19.6도가 변하는 속도로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고, 블랙수트의 경우 최고값이 18도/분이었네요.
여기서 주의하셔야 할 점은 실제로 생두의 온도가 1분 동안 19.6도가 변한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이것은 그저 그 시점에서 생두의 온도가 변하는 속도였을 뿐, 그 후로 지속적으로 RoR값은 줄어들었습니다. 생두의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에 약간의 왔다갔다하는 흔들림은 있었지만 대체로 느려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잠깐 열전달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자주 열전달을 경험하죠. 추운 겨울에 배에 붙인 핫팩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열을 공급합니다. 이때 전달되는 열의 양은 두 물체의 온도차이에 비례합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생두의 온도가 가장 낮은 로스팅 초반에 생두에 전달되는 열의 양이 많게 됩니다. 그만큼 온도도 빠르게 상승을 하게 되겠죠. 생두의 온도가 로스팅 챔버 안에 투입된 공기의 온도와 비슷해질수록 같은 환경에서 열전달량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일정한 화력을 생두에 지속적으로 가하면 RoR이 자연스럽게 낮아지면서 결국 무사히 로스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위 그림의 아래쪽을 보시면 하나의 그래프가 더 있는데 그것은 로스터기의 화력(가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블랙수트와 벨벳화이트 모두 일정 시점에 이르러 화력을 점진적으로 줄였음을 알 수 있죠. 왜 패트릭은 화력을 줄여야 했을까요. 그것은 패트릭이 '커피'를 로스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 로스팅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커피의 물성입니다. 로스팅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자주 비교되는 카카오와 견주었을 때, 생두는 꽤 높은 온도의 로스팅을 필요로 합니다. 160도 이후에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이나 캐러멜라이제이션을 제외하고도, 높은 온도를 적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죠. 바로 열전달이 잘 일어나지 않는 커피의 내부까지 잘 익히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커피 로스팅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내부를 잘 익히려다 보면 곧잘 외부가 그슬리거나 심할 경우 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그러한 이유로 일반적인 로스팅 화력 조절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커피의 수분이 상당량 있어서 그슬림 걱정을 덜해도 되는 초반에는 열전달량을 최대로 하기 위해서 최대 화력을 적용하고, 일정 시점 이후에는 외부를 그슬리지 않으면서도 내부를 익힐 수 있는 수준의 화력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화력을 낮추면 로스팅이 너무 느려지지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로스팅 챔버 안에 많은 열량이 들어있고, 후반부에 생두 자체에서 발열반응이 일어나기도 하거든요.
진짜 문제는 앞에 말한 적절한 화력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스테이크처럼 온도계를 꼽거나 칼로 잘라서 보기가 어려우니 참 난감한 일이죠. 그래서 우리 로스터들은 그 화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커피 온도의 RoR 그래프를 봅니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기울기여야 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대체로 RoR 그래프가 하강하도록 화력을 조절합니다. RoR 그래프가 상승하거나 평평하게 진행하는 경우 부정적인 플레이버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스콧 라오의 유명한 주장이고,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RoR 그래프의 하강여부를 화력 조절의 주요한 힌트로 삼는 것이죠.
커피의 로스팅 프로파일에 정답이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생두마다 물성이 다르고, 같은 생두라도 로스팅 시점에 로스터기에 투입되는 공기의 온습도에 따라서 로스팅 프로파일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커피를 로스팅할 때마다 로스터들은 바짝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트릭이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여러분의 존재도 모른 채 로스팅룸에서 로스팅 프로파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패트릭이 보는 것은 RoR 그래프 뿐만은 아니고, 다른 여러 가지를 체크하죠. 이번 글에서는 여러분이 많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 RoR 위주로 다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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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벨벳화이트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