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Duplicate
✉️

로스터, 어떻게 지내나요?

뉴스레터
#018. BB 로스터 인터뷰 Part.1
컨트리뷰터
정혜진 Linda
김선민 Kev
이준명 Patrick
발행일
2021/08/04
Tags
인터뷰
커리어
1 more property
"안녕하세요오~!"
매주 목요일 아침, 로스터리에 들리는 활기찬 목소리가 있습니다. 정혜진 바리스타(이하 린다)와 윤혜정 바리스타(포니), 콩팀 멤버입니다. 주간커핑에 참여하고, 생두 정보를 리서치하고, 커핑 로그를 바리스타 팀과 공유하느라 매주 로스터리에서 만나거든요.
주간커핑에 바리스타 콩팀이 합류하고 달라진 것들을 꼽아봅니다. 하나, 그냥 신난다. 둘, 커핑 후 논의할 때 언급되는 테이스팅노트들이 한결 다채로워졌다. 셋, 좋은 커피에 대한 호들갑으로, 설레는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로스터리 팀을 흔들어깨운다. 넷, 로스터리와 바리스타 팀, 서로 이해도를 높인다.
그렇게 목요일에 만나던 린다가, 7월에는 다른 요일에도 출몰했어요. 로스터 케이브와 패트릭을 인터뷰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 날이 끝이 아니더군요. 추가 인터뷰가 이어지고, 한 명씩 따로도 만나고, 사진 찍으러도 오더니, (정애라 바리스타가 보내온 11-12페이지짜리 녹취록에 놀랐던 제게 정신차리라는 듯) 무려 36p짜리 녹취록을 보내왔습니다................
그 인터뷰의 에센스를 두 편에 나눠 보내드립니다. 미처 담지 못한 서사시는 앞으로 서서히 풀어가 볼게요. 자, 이제 린다에게 마이크를 넘깁니다.
주간커핑 후 의견 공유 시간. 왼쪽부터 — 김선민 로스터 Kev, 윤혜정 바리스타 Pony, 정혜진 바리스타 Linda, 그린빈 코디네이터 로사 Rosa, 김민수 연구원 Derek.
안녕하세요. 평소에는 신도림 BB, 목요일에는 인천 로스터리에 있는 린다입니다.
근사한 말로는 '로스터리', 날것으로 부르면 '커피 공장'. 커피 볶는 향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제겐 사람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에요. 오늘은 여기서 커피를 만드는 두 로스터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로스터 케이브와 패트릭을 소개합니다.

케이브
BB의 전자혀. 엄청난 센서리 능력의 보유자. 섬세한 컵간 차이를 혼자 짚어내곤 해서 함께 커핑하는 사람들을 놀래킨다. 후각과 미각만큼이나 모든 면에 섬세하지만 커피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BB의 로스팅을 리드한다.
패트릭
BB 대표 츤데레. 개인적으로는 입사적 멘토이자 열정 롤모델. 지금 나에게 ‘커피에 대한 열린 생각’과 ‘성장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면, 거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 바리스타로서의 오랜 경력을 뒤로 하고 로스터 신입(?)으로 커리어를 전환했다.
주간 품질관리 QC 커핑시간. 왼쪽부터 김선민 로스터 Kev, 이준명 로스터 Patrick. (패트릭 빵터졌다 ㅋㅋ)

커피 마시는 사람

린다 :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케이브 : 예전에는 그때그때 좋아하는 커피 스타일이 있었어요, 어떨 때는 내추럴 커피 좋아했고 어떨 때는 시트러스한 느낌을 좋아했고요. 지금은 이런 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그 카테고리 안에서 좋은 커피면 좋아요.
린다 : 라떼면 그 카테고리 안에서 좋은 것. 워시드면 그 카테고리 안에서 좋은 거라는 거죠?
케이브 : 네, 맞아요.
린다 : 패트릭은요?
패트릭 : 어느 정도 산미 있는 커피, 에티오피아 커피 좋아해요. 그런데 웬만해서는 커피 맛으로 불평하지 않아요.
테스트 로스팅중. 김선민 로스터 Kev 사진. 정애라
린다 : 좋아하는 카페 있으세요?
케이브 : 최근에 자주 가는 데는 ‘커피 파운드’. 저한테 되게 좋은 카페예요. 여러 해외 로스터리 커피를 마셔볼 수 있잖아요. 진열된 원두들을 보면서 ’오늘은 어떤 로스터리 커피를 마셔볼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마시면서 ’이 회사는 이런 재료를 쓰네? 비율은 어떻게 되네? 로스팅 잘 하는 것 같다.’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는 대만에 있어요. 10년 넘게 가고 있는 ‘루프스Rufous Coffee’라는 곳이에요. 커피도 맛있는데 무엇보다 사장님이 좋아요. 말수가 없고 과묵해요. 근데 그 사람이 커피 만드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요. 온 정성을 다해서 커피를 만드는 게 나한테까지 느껴지고 그 모습이 언제 가도 그대로에요. 10년 동안, 아니 10년이 넘었어요.
저는 ‘나처럼 말주변이 없으면 바리스타로서나 카페 사장으로는 힘들겠다’고 생각었는데 그 분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꼭 손님들과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이 분위기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구나. 저 사람처럼만 성실하게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
루프스 커피 | 사진. 인스타그램 @rufous_coffee_1
린다 :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계시겠네요. 나중에 대만에 가면 꼭 가보고 싶어요. 패트릭은 뉴질랜드에서 커피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야기 좀 해주세요.
패트릭 : 저희 가족이 이민을 갔는데 부모님이 카페를 하셨거든요. 저도 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아, 지금 생각하면 그게 커피인지. 그때 제 커피를 드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들어가면서 스타벅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졸업 후엔 이왕 하는 거, 하면서 점장까지 하게 됐고요. 그러다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린다 : 뉴질랜드는 한국이랑 커피 문화가 어떻게 다른가요?
패트릭 : 제일 다른 부분은 하루에 마시는 커피 잔 수예요. 아침에 왔던 손님이 퇴근하면서 한 번 더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고객과 소통이 정말 많아요. 바리스타로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하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자랑이지만, 제 단골이 엄청 많았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마감 직전에 한 고객이 슈거 프리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셔서 만들어 드렸는데요. 고객이 받아서 나가면서 한 모금 먹더니 다시 돌아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뭐가 잘못됐나 생각했는데, 자기가 지금까지 마셔봤던 스타벅스 커피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얘기하더니 팁을 5불을 주고 갔어요. 커피가 4불이었는데…!
오늘 로스팅에서 기억할 정보를 벽에 적어본다, 이준명 로스터 Patrick 사진. 정애라
린다 : 패트릭이랑 같이 일했을 때도 비슷한 장면들이 기억나요. 예를 들어 주문 마감시간이 조금 지나서 들어온 분에게 그 고객이 여기까지 와준 걸음을 생각하며 흔쾌히 만들어드린다거나,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고객이 요구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서 고객이 엄청나게 만족을 표하고 가신다거나.
그런 게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꼈어요. 일반적으로 커피업계에 5년 후, 10년 후 롤모델이 많지 않은 게 아쉬운데 패트릭은 40대 접어들고도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있잖아요. 바리스타 팀에서 패트릭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요.

로스팅 일의 시작

린다 : 케이브, 패트릭 두 분은 처음부터 로스터가 꿈이셨어요?
케이브 : 이렇게 얘기하면 멋이 없지만, 저는 바리스타 일이 제 성향과 안 맞다는 생각 때문에 로스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어요. 커피는 잘 하고 싶은데 하다 보니까 ‘바리스타로는 평생 커피 못하겠다’ 싶었거든요. 왜냐면, 저는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것 같으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고문받는(?) 것 같고요. 그 때는 바리스타로서 성공하려면 대회에 나가서 우승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스트레스였어요.
커피는 계속하고 싶은데, 바리스타가 아니라면 뭘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매주 팀에서 하는 커핑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로스팅 일은 제 성향과 맞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러다가 로스터가 한 명 더 필요해졌을 때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어요.
프로덕트 로스팅중, 이때는 불러도 못 듣는다. 이준명 로스터 Patrick 사진. 정혜진
패트릭 : 저는 굉장히 오랫동안 어필했어요.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거의 20년을 바리스타로 일했으니 바리스타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스타벅스에 바리스타로 입사한 게 2003년이고, 로스터로 일 시작한 게 2018년이에요. 스페셜티 커피에서 'Seed to Cup' 이야기를 하잖아요. 농장과 가까운 쪽으로 움직여보고 싶었어요.

로스터로 일하면서 기억나는 순간

린다 :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각자 좋아하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음료가 유난히 아름답게 만들어졌을 때, 아침에 조용한 매장에서 오픈 준비를 할 때 샷잔에 샷이 쪼록하고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팀원들과 유난히 손발이 잘 맞는 날. 그런 순간에 매력을 많이 느끼거든요.
커핑룸에서, 김선민 로스터 Kev 사진. 정혜진
린다 : 로스터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케이브 :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어요. 제품에 직접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직접 뭘 만드는 걸 좋아했었거든요. 그런 저의 성향이랑 제품을 만들어 나가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패트릭 : 일하면서 반복되는 루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도 계속 변화가 생기는 게 재미있어요. 저한테 제일 재미를 주는 부분은 어떤 커피든 처음 로스팅할 때예요. 월초에 새로 소개하는 커피가 대표적이고요. 기존에 운영하던 제품의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어요. 똑같은 생두로 로스팅을 하는데도 계획대로 진행이 안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매순간 모니터링하면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데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게 재미있어요.
다른 로스터가 볶은 커피와 비교중, 로스터리 팀.
린다 :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케이브 : 커피에 대한 피드백이 좋을 때. 그게 바리스타 팀이든, 홀세일 파트너사에서든, 인스타에 올라온 글이든. 루트와 상관없이 좋은 반응이 왔을 때, 그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껴요.
패트릭 : 저도 똑같아요. 하나 더 있다, 케이브가 준 설계도대로 제품 생산이 잘 구현됐을 때.
린다 : 두 분에게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케이브 : 커피에 대한 전문성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점인 것 같아요.
패트릭 : 계속 뭔가를 새롭게 배우게 된다는 것. 로스터리 팀 안에서도 각자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데, 그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이해하는 영역이 넓어지는 게 되게 많거든요.
주간 QC (완제품 품질체크) 세션. 서로 다른 2개의 로스팅 프로파일 토론중. 케이브와 패트릭
린다 : 그런데 항상 즐거운 순간만 있진 않을 것 같아요. 저 아주 예전에 개인 카페에서 잠깐 로스팅을 했었거든요.
패트릭 : 오, 린다 로스터셨군요?
린다 : 아니에요. 그냥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볶는 수준이었는데, 무거운 생두 자루 나르는 거랑 먼지 때문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케이브랑 패트릭은 로스팅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우신가요?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케이브 : 사실 물리적은 어려움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에요. 생두 자루에서 날리는 가루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호흡기 질환이나 알러지, 생두 포대가 무겁다는 점 같은 것들인데요. 다 극복 가능하거든요. 체력이 부족한 건 운동을 해서 기르면 돼요. 제 생각에 이건 여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생두 포대 드는 게 다리 힘이 중요한 거거든요.
* 생두 포대 평균 약 60-70kg
이준명 로스터 Patrick, 생두창고에서 다음 로스팅할 생두 계량중. 사진. 정혜진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도 일하는 거죠. 화려한 스토리는 없어요. 반복되는 루틴이 있고, 기쁜 순간도 있지만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이 더 많고요. 바에 있는 바리스타들이나, 사무실에서 이메일로 소리없는 전쟁하는 팀원들이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희는 주로 이런 것들로 씨름하며 지냅니다.
1. 하루 8시간짜리 마라톤
패트릭 : 아침에 로스팅 머신에 생두가 투입되는 그 순간부터 마라톤이에요. 일정한 속도로 계속 뛰어야 해요. 내가 쉬고 싶다고 쉴 수 없는 거죠. 가끔 오늘처럼 비염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훌쩍거리면서도 로스터기는 계속 돌고 있으니까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린다 : 택배 마감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거죠?
케이브 : 맞아요. 하루 근무시간을 꽉 채워서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라 10분이라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어요.
2. 사소한 실수, 큰 임팩트
패트릭 : 계속해서 집중해야 하는 거요. 한 번 로스팅할 때마다 제품에 맞게 세팅을 바꿔줘야 하는데 뭐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그게 제품 퀄리티에 영향을 미치는 실수로 이어져요. 그런데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미치는 영향이 크잖아요. 제품 품질에 영향이 있을 정도의 실수면 한 번에 20-30kg씩 폐기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실수 없이 진행했는데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로스팅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런 변화가 내 통제 밖에 있다고 느낄 때 어려워요.
로스팅이 끝나 배출된 원두, 쿨링중.
쿨링이 끝난 원두는 판매단위에 따라 포장된다.
3. 커피 맛에 대한 제보
케이브 : 마지막으로 커피 맛 제보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요. 로스터의 숙명이니까 저희가 안고 가야 하는 거죠. 린다도 잘 알다시피 커피는 정해진 답이 없잖아요. 같은 커피를 마셔도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답을 택하는 거예요. 이 작업이 되게 재밌을 수도 있는데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좋을 때는 잘 사용해주시다가 문제가 있을 때 연락을 주시는 거니까 부정적인 피드백의 빈도가 높을 수 밖에 없잖아요. 마음이 어려울 때가 있죠.
린다 : 매장에서도 많이 겪는 상황이라 공감돼요.
주간 커핑, 로스터리 팀.
케이브 : 커피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연구되는 영역이 꾸준히 늘어나고는 있지만, 미개척분야가 여전히 많아서 책에서 참고하는 지식만으로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가 많아요. 직접 데이터를 오랫동안 쌓아가고 연구하면서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데이터 측정하고 축적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가 되어가겠죠. ‘이런 경향성이 보이네’, ‘계속하다보면 다른 부분도 더 보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린다 : 어느 분야든 배움에는 끝이 없네요.
로스터 인터뷰 Part.2 바로가기
__
로스터 커리어에 관심있는 분에게
5년 전, 지금, 5년 후
BB레터 독자 Q&A
오늘 레터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로스터 케이브와 패트릭에게 궁금하거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함께 남겨주세요. :)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주 레터에 함께 담아볼게요. 한 마디 남기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 콘텐츠 제공자 또는 해당 콘텐츠 제공자와 에이블커피그룹이 공동으로 보유합니다. 콘텐츠의 편집 및 전송권은 에이블커피그룹이 갖고 있습니다.